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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

30대 중반의 직장인 A씨는 아침마다 출근길이 고통의 연속이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눈길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가슴이 조여오고 숨이 막힌다. 시선을 피하려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본다. 그는 말한다. “아무도 날 안 본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몸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아요.”

A씨는 고등학교 시절, 발표 중 친구가 킥킥거리며 웃었던 일을 계기로 사람들의 ‘시선’에 예민해졌다고 회상한다. 이 사건 이후, 그는 누군가 자신을 본다는 느낌에 강한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이처럼 시선 공포증은 단순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해치는 심리 질환이다.

시선 공포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실제 사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운 이유

시선 공포증(스코포포비아)은 단순히 사람들의 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눈빛 속에서 평가, 조롱, 비난이 담겨 있다고 느끼는 것에서 시작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대화 중에도 상대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이나 벽을 응시한다.

20대 여성 B씨는 인터뷰 자리에서 “눈을 보면 내 내면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요. 마치 내가 들킨 것처럼요”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시선은 연결이 아닌 침입이다. 이는 유년기부터 부모의 비판적인 시선을 자주 경험하거나, 학창 시절 또래 집단의 무언의 압박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지옥 – 카메라 공포

시선 공포증은 이제 오프라인을 넘어 디지털 공간에서도 확장되고 있다. 특히 영상 회의나 SNS 노출이 일상이 된 지금, 화면 너머의 ‘보는 눈’은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한다.

직장인 C씨는 매일 이어지는 줌 회의 때문에 번아웃 상태다. “카메라를 켜는 순간, 다들 내 얼굴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표정을 조절해야 하고,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결국 상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화상회의 시 음성 참여만 허용받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시선 역시 사람들에게 심리적 무게를 더하는 시대가 되었다.


시선을 피하는 삶 – 사회로부터의 후퇴

시선 공포증은 종종 우울증이나 광장공포증과 연결된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줄이고, 밖에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며, 결국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40대 남성 D씨는 과거 활발했던 영업직이었지만, 지금은 비대면 업무만 겨우 이어가고 있다. “거울만 봐도 누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아요. 길을 걷다 누군가 쳐다보면, 돌아서 도망가고 싶어요.”

그의 삶은 좁아지고 있다. 가족 모임, 동창회, 심지어는 가까운 마트조차 피하게 된 그는 자신이 ‘투명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시선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싶은 욕망으로까지 번져간다.


치료의 시작은 나를 직시하는 것

다행히도 시선 공포증은 극복 가능한 증상이다. 많은 심리 전문가들은 인지행동치료(CBT)와 노출 훈련을 병행한 접근을 제안한다. 처음엔 혼자 거울을 마주보는 연습부터 시작해, 점차 사람들과 짧은 눈 맞춤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20대 대학생 E씨는 “거울을 보며 내 표정을 읽는 연습을 했어요. 눈을 피하고 있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동시에 조금씩 나를 이해하게 됐어요”라고 회고한다. 그는 현재 상담과 노출 훈련을 통해 시선 공포를 많이 완화했고, 자신이 누군가와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믿게 되었다.


그 눈빛이 나를 괴롭힐 수 없도록

우리는 시선을 통해 소통하고 연결되지만, 때로는 그 시선이 족쇄가 되어 마음을 옥죄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시선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 시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요즘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보이는 것’에 민감한 시대다. SNS의 ‘좋아요’ 수, 카메라 속 나의 모습, 누군가의 시선으로 점철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자꾸만 나 자신을 평가하게 된다. 외모, 직업,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나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모든 시선이 나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저 존재를 인식하고, 살아 있음을 증명해주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이다. 타인의 눈빛은 그저 하나의 빛일 뿐, 그것이 나를 아프게 만드는 그림자가 되지 않도록 내가 그 의미를 다시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

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면 움츠러들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사람도 나처럼 불안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처럼 시선은 무조건적인 공격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와 똑같이 외로운 누군가의 연결 시도일 수 있다.

지금도 누군가는 지하철 안에서, 교실에서, 사무실에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보여지는 나’와 ‘진짜 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투명해지고 싶어 한다. 그럴 때일수록 꼭 기억하자. 당신은 시선의 대상이기 전에, 스스로를 사랑받을 존재라는 것.

눈을 감아버리는 대신, 천천히 시선을 올려보자. 불안해도 좋고, 떨려도 괜찮다. 그것은 ‘용기’라는 감정이 몸으로 표현된 신호일 뿐이다. 시선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그 순간, 세상이 조금씩 따뜻해질 것이다.

당신이 느끼는 그 무거운 시선, 어쩌면 가장 먼저 당신이 자신에게 보내고 있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그 시선을 조금 더 너그러이, 따뜻하게 바라보자. 세상의 눈빛은 당신의 적이 아닌, 당신을 이해하려는 또 다른 방식일지도 모르니까.